[돔꾸] 같은 집을 공유하는 일 ©ATM_of_Camus
커미션쿠쿠2023-04-23 23:01


동거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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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 수도꼭지를 부서뜨렸지?! 하는 건 안 말릴 테니까 말이라도 하라고 하지 않았어?!”

화창한 아침, 평화로운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에서 평화롭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음은 무시하고서― 집을 울리는 건 어김없이 츠키오카 쇼우의 목소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모토 타이가를 향해 소리치는 츠키오카 쇼우의 목소리다.

“물이 나오는 데 문제는 없잖아? 아가씨.”
“이, 엘리베이터 고장 났다고 뛰어내릴 도모토 타이가! 그게 물이 나오는 거야?! 그냥 분수처럼 솟구치는 거지?!”
“기다릴 시간은 줄어서 좋겠군. 아가씨는 늦잠을 자주 자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도모토 타이가는 끝 모르고 이어지는 쇼우의 목소리를 적당히 듣다가, 미안, 미안, 오는 길에 부품 사서 고쳐 둘 테니까 화 풀어라. 같은 소리로 싸움을 끊었다. “애초에 부서뜨리지 않으면 되잖아!”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타이가는 그런 사소한 불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조금 더 조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해 줄까. 그로서는 별로 불편하지 않고, 쇼우가 그를 향해서 떽떽 목소리를 높이는 걸 듣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딱히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조각 난 수도꼭지를 든 쇼우의 손목이 그의 기억보다 조금 더 얇아서 그 점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사는 데 지장 있겠군. 바이올린 연주에 어울리는 손목일지 모르겠지만, 도모토 타이가의 기억 속엔 저보다 굵은 손목을 하고도 충분히 성공했던 수많은 연주자의 이름이 있다.
바이올린은 더없이 섬세한 악기다. 그 섬세함과 예민함을 다루어서 소리를 빚어내는 연주자들도, 섬세하거나 예민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니, 이야기가 아닌가.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으레 우스갯소리로, 바이올린 연주자는 성격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도모토 타이가는, 다른 연주자는 몰라도, 저와 함께 사는 츠키오카 쇼우에 한해서는 그 사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아침은 똑바로 먹어야 한다니까!”
“차려 주는 건가?”
“하아? 점심도 저녁도 내가 준비하잖아? 아침쯤은 네가 준비해야지?!”
“아쉽게도, 콘미스님같은 대단한 아가씨에게 걸맞은 음식은 할 줄 모르는데.”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이면, 츠키오카 쇼우는 치솟는 열불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말을 참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속이 눈에 보일 정도로 훤하다. 하여튼, 저렇게 속이 빤히 보여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도모토 타이가는 츠키오카 쇼우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저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저번에 했던 음식! 맛있다고 주변에서 떠드는 거 들었거든?! 그 정 도만 해도 되잖아!”
“아, 그거.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만.”

역시 타이가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쇼우의 속을 긁는다. 제법 악취미란 자각은 있지만, 원래 도모토 타이가란 사람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던가? 츠키오카 쇼우가 평소에 짊어지던 무게나,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지 않는 감정 따위를 생각하면, 타이가는 쇼우가 조금 더 화를 내고 조금 더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방식이야 뭐, 배워먹지 못한 불량배가 아는 게 얼마나 있겠다고 대단한 일을 하겠나? 그는 그런 말을 두어 번 더 떠올리며, 이익! 하는 목소리가 작은 햄스터가 소리 지르는 모습하고 비슷하다고 단정 지었다. 작아서 그의 한 손으로 모두 덮을 수 있을 것 같은 머리나, 그 머리의 동그라미 실루엣이 똑 닮았다.
그는 제 만족스러움을 태평하게 드러내는 성정은 아니다. 그러니 저 콘미스가 아무리 귀엽다고 생각한들, 입 밖으로 내는 일도 없다. 뭐, 마음이 내키면 제멋대로 떠들 때도 있겠다마는, 기본적으로 생각을 나불나불 지껄여대는 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츠키오카 쇼우가 목소리를 높여서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그는 저 콘미스에게 어울리는 꽃이나 동물 따위를 대어가면서 정신을 놓고 있었지만,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태평함은 제법 보였겠지. 도모토 타이가의 머릿속과 조금 다른, 예를 들어서 성의 없음 따위로 보였겠지만.

“너무하지 않아?! 집에서는 자주 하지도 않으면서, 여기저기서 네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나 들리게 하고!”

도모토 타이가는, 이쯤에서 뭔가 자기가 크게 실수했음을 확신한다. 그러니까, 뭔가 대단히 큰 실수.
츠키오카 쇼우는 높아진 목소리로 무어라 소리치려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어버린다. 그 작은 입속으로 사라져버린 감정이 그리 작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이가는 그 사실에 덧붙여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의 시선으로 쇼우가 중요한 말을 삼켰다고 직감한다. 정말로, 중요한 말. 그에게 서러웠던 점, 말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 같은 것. 어지간해서는 제 할 말을 다 하는 쇼우가 저리 구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니, 어지간히도 마음이 상했다는 뜻이겠지. 도모토 타이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나,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인 탓도 있었지만, 그저.
쇼우의 서러운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평정을 뒤흔들어버린 탓이다.

“됐어.”
“너, 잠시―”
“오늘은 늦게 들어올 거니까, 저녁이든 뭐든 알아서 해결해, 도모토 타이가.”
“기다―”

문장과 단어 사이에서 우물거리는 입술 속에는 분명 미처 하지 않은 말이 가득 들어있을 텐데, 쇼우는 그에게 단어를 을러주지도 않고 등을 돌려 나가버렸다. 익숙한 감각. 끝장나버린 협주곡의 중간에 느껴지는, 음이 완전히 엇나가버린 순간의 불협화음.
도모토 타이가는 아무래도, 제가 멍청하게 굴었던 모양이라고 확실 하게 자각했다.

츠키오카 쇼우가 씩씩대며 밖을 걷다가 괜히 서러워서 울컥 올라온 감정을 입술을 깨물며 삼킬 무렵, 도모토 타이가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던 집에 혼자 남아 소파에 걸터앉았다. 왜 여기까지 왔더라?
휑하니 비어버린 듯, 찬 바람이 분다고 느껴지는 거실 안에서, 도모토 타이가는 제가 집에서 요리도구를 잡지 않았던 이유부터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는 타인과 산 나날이 길지 않다. 그래,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뭐, 되지도 않는 섬세한 예술가 흉내를 내면서 어울리지 않는 환경이니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니 하는 대단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셈은 아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거친 일을 제 앞마당을 노닐 듯 해낸 인간이다.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와서 음악가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적응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적응이라면 적응인가. 어울리지도 않은 짓을 하려던건 맞았다. 그러니까, 도모토 타이가는, 그래.

츠키오카 쇼우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결국 상대방의 입맛에 맞췄을 때나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정성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생각할 만큼 얼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쇼우의 입맛에 무지하다는 관점에서 제일 먼저 접근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알고 있지만, 집에서 해 먹는 밥, 이라는 건 바깥에서 사 먹는 것과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던가. 그러니 도모토 타이가는, 츠키오카 쇼우가 해주는 요리를 먹으며, 제 나름대로 그 입맛을 분석하던 참이었다. 간을 하는 버릇이나 익히는 정도, 재료를 자르는 정도나 취향.
그래, 도모토 타이가는 문제의 시작을 짚어냈다. 타이가는 예전부터
츠키오카 쇼우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은 적도, 깊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도, 장기적으로 그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인식도 없었다.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라이벌로 만난 사이에서 대단한 인연을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었나? 그는 원래 무언가를 기대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기대 후에 찾아오는 실망은 몇 배로 잔혹한 법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그는 애초에 ‘이런’ 상황을 상정한 적이 없다. 츠키오카 쇼우와 같은 집을 공유하는 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공유하며 서로의 일상을 함께하는 건, 대관절, 상상조차 한 적 없다. 그가 쇼우에게 제멋대로 흔적이니 증표니 남겨댄 건 그가 글러 먹은 불량배였던 탓에 저 좋을 대로 만족을 추구했던 탓이지, 이런 순간을 위함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들떴던 모양이다. 어울리지 않게, ‘제대로’ 해 보겠다고 불량배에 걸맞지도 않은 짓거리를 해 댄 탓이지.

“멍청하긴…….”

언제나 그의 혼잣말에 누군가 대답해 주던 환경이라는 건, 사라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기 마련이다. 도모토 타이가는 반사적으로 또 그런 소리 한다! 하고 소리치는 쇼우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이번에는 진심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폐에서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로, 참담한 패배를 받아들인다. 그래. 그는 여우다. 여우라기엔 너무 교활하고, 추잡하며, 사람도 못 되는 놈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쇼우의, 어린 왕자의 앞에 제 목줄을 물고 쭐레쭐레 뛰어간 여우였다. 우스울 정도로 명백한 패배. 도모토 타이가는 마른세수 끝에 앞치마를 찾아 주방으로 향했다. 그래, 이건 그가 사과해야 할 일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사과한 횟수를 따졌을 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츠키오카 쇼우는 알지 못하겠지만, 몰라도 좋다. 그저, 그는 그래. 차마 입밖에 낼 수도 없는 진심을 그저 떠올렸다.
책임지라고, 콘미스님.

도모토 타이가가 긴 사유를 끝내고 제 얼간이 같음을 절절하게 곱씹고 있을 무렵, 츠키오카 쇼우는 호기롭게 나온 것 치고 오늘 일정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허탈함에 푹 잠겨있었다. 아니, 좀 어린애 같았나? 격한 감정이 지나가면 으레 튀어나오곤 하는 자책이나, 차가운 심정. 하지만, 정말로 서러웠는데. 쇼우는 같이 사는 나한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음식을 다른 사람들은 다 먹어봤으며, 심지어 별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다 먹이기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참담한 심정을 기억한다.
감상을 물어보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는, 도모토 타이가가 확실하게 목적을 가지고 그런 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별로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도 믿어지지 않고 가끔 짜증이 치밀지만, 도모토 타이가와 츠키오카 쇼우는 같은 집에서 산다. 같은 침대를 쓰지는 않지만, 가끔 밤에 방을 들여다볼 때도 있다. 책이나 영화를 보면 감상을 나누고, 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츠키오카 쇼우는, 도모토 타이가와 그가 공유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최소한 서로에게 제일 가까우리라고.

아, 짜증나!
땅을 파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건 도모토 타이가와 지내며 생긴 버릇 중 하나기도 하였다. 쇼우가 우울한 기색을 내비치면 타이가는 끈질길 정도로 그를 놀려댔기에, 속이 터져서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그건 타이가 나름의 배려였다고, 가끔 생각하고는 하지만, 열받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배려였다.

“…….”

츠키오카 쇼우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지만, 엉켜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들어줄 사람이 없기에 그렇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결국 해야만 하는 말은 속에 고이고 만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서야 하고, 솔직하지 못한 타이가가 이런 일에 먼저 나서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이건.
치사한 사람에게 지고야 마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츠키오카 쇼우는 결국 잔뜩 엉켜버린 속을 돌아가서 도모토 타이가에게 쏟아붓기로 마음먹고, 가까운 가게로 향한다. 그래도 수도꼭지는 새로 사야 하니까. 혹시 또 부숴버릴지 모르니까, 넉넉하게 세 개쯤 사서, 가까운 카페로 들어섰다. 달고 맛있는 걸 잔뜩 시켜서, 혼자서 모두 먹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세 입을 아주 작게 잘라 먹으면서, 홀로 다짐한다. 이걸 다 먹으면 돌아가야지. 그리고 이번엔, 제대로 이야기해야지.

그리고 그날 저녁, 집안 가득 풍기는 음식냄새 속에서, 쇼우는 방금 먹은 쇼트 케이크 한 조각은 안 시켰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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