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쿠쿠] 전자의 바다에서 해수의 바다에게 ©ATM_of_Camus
커미션쿠쿠2023-04-23 22:47


츠키오카 쇼우는 바다에서 태어나 살고 있지만, 바다를 모른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할까? 그들은 전자의 바다에서 비롯된 존재지만, 현실의 바다를 모른다. 아처라면 알고 있겠지만, 설명해 달라는 소리를 들으면 마스터의 정체에 관한 사실을 떠올리는 일에 수반되는 감정을 숨 기기 위해서 유난히 잘난 듯이 굴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겠지만, 그건 쇼 우가 바다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말로 듣는다고 가 본 적 없는 곳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쇼우는 바다를 모른 다. 문셀은 아주 효율적인 움직임을 추구해서, 예선이 끝나면 사라질 NPC에게 많은 기억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츠키오카 쇼우에게는, 바다 의 기억이 없다.

 

바다의 로망, 이라는 건 무엇일까? 구교사의 도서관에서 바다에 관한 책을 펼쳤을 때, 쇼우는 생각했다. 모래사장을 돌아다니며 닳고 닳아서 보석같이 변해버린 유리와 조개껍데기를 찾아 헤매는 일. 발목과 종아리 를 간지럽히는 파도에 휘청거리는 경험. 백사장의 하얀 모래는 몸을 충 분히 떠받칠 수 없어서 휘청일 수 있다고 말한다. 자갈이 구성하는 해변 도 다르지 않아서, 둥근 돌이 구르면 휘청이는 일이 있다. 문셀에서 얻 을 수 있는 정보로 린과 레오가 파도 소리를 재현해 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벚꽃 흐드러진 구교사에서, 파도 소리가 바다를 불러 줄 수 있을 까? 그러니 츠키오카 쇼우는 린과 레오의 호의를 거절했다. 바다 사진이 잔뜩 수록된 책을 들고, 복도에 우두커니 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처에게서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 었더라? 

밉살스러운 말만 해대는 안데르센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의심하고 싶지는 않은 키아라도, 저마다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한다. 육지 에서 태어났으나 해수로 가득 찬 수면 아래의 대지를 동경하는 사람들. 츠키오카 쇼우는 물질로 된 땅을 밟아 본 기억조차 없으니, 그들이 말하 는 ‘경험’을 짐작하며 웃을 따름이다. 

쇼우의 서번트인 아처는, 언제나 밉살스러운 말을 하는 일이 더 잦지 만, 기본적으로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다정하지 않았다면, 마스터를 위해 서 이토록 위험한 곳까지 뛰어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밉살스런 말 앞에서 화를 내지 않는 것도 쇼우에겐 무리였다. 그래, 무리였다. 

 

“생각해서 답이 나오지 않을 일을 생각하는 건 그냥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만.” 

“뭐?! 그게 할 말이야? 아처는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바다’에 대 해서 생각한다고 여긴 거야?!” 

“그러니까 그 건은 사과하겠다.” 

“사과고 뭐고, 별로 슬프지도 않으니까 그렇게까지 굴 필요 없지만. 나는 아량 넓은 마스터니까 받아줄게.”

“하. 고마운 일이군.” 

 

마이룸에서 보내는 하릴없는 시간. 내일이면 사쿠라 미궁으로 돌아가 서 다시 미궁을 탐사해야 하는 순간들. 결국 내일의 일을 잠시 유예하고 있을 뿐인, 휴식의 시간. 쇼우는 다시 ‘바다’를 떠올린다. 딱히 깊은 의미 는 없다. 단지 이 구교사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고, 그중에서 BB와 관련되지 않은 일은 더더욱 없을 뿐이다. 당장 답을 낼 수 없지만 눈앞에 닥쳐버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보다는, 가본 적 없지만 누 구나 아름답다고 말하는 곳에 대해서 고민하는 쪽이 낫다. 적어도 츠키 오카 쇼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곳. 언제나 노을이 지는 구교사에서, 바다 의 꿈을 꾼다. 전자의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해수의 바 다를 생각하는 건 꽤나 낭만적인 일이 아닐까? 노을이 비쳐드는 커튼 너머에서, 손을 꿈지럭대며 모두의 이야기를 조합하고 있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오랫동안 우울한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나, ‘바다’가 신경 쓰이는 건가?” 

 

결국 먼저 입을 열어서 말을 걸어온 쪽은 아처였다. 

 

“무책임한 말을, 부주의하게 했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 그래서 사과하 겠다고 말했다만……. 그걸로는 모자라겠지.” 

 

결국 이런저런 말을 해도 쇼우에게는 무른 사람이다. 아처는 약한 사 람에게, 그가 오랫동안 포기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약하다. 그게 아니라도, 그들이 쌓아 올린 인연이 아처의 두껍고 단단한 벽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아주 오랫동안 물을 잃고 단단하게 말라버린 무언가를 애정 의 바다에 넣고 불리듯이, 단단해서 베어먹을 수 없는 음식을 입 안에서 굴리며 갉아먹듯이, 그들 사이의 거리와 벽은 조금씩 녹아내렸다. 이제 는, 쇼우도 아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한다. 그러니까 아처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대로 둘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런’ 방식의 구원을 아처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결국 친애하고 호의를 품은 사람에 관한 일이라면, 그것이 심각하지 않은 일이라면 더더욱, 눈 을 감아버리는 구석이 있다. ‘차라리 ‘바다’를 모른다는 사실을 내버려 두고, 구교사의 풍경으로 만족하게 두었다면 츠키오카 쇼우가 자신의 기 원을, 근본을 자각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겠지.’ 분명 아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결국 책임을 혼자 떠안고 조용히 감정을 삼킬 것이다.

 

“그런 건 아니라니까.” 

“하지만 마스터, 마이룸에 들어온 이후로 줄곧 창밖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평소의 너라면 조금 더, 시끄러울 정도로 종알종알 떠들며 나 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텐데.” 

“그건…….” 

 

확실히 부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우는 아처의 올곧은 눈 앞에서 조금 당황스럽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처는 걱정을, 책임감을, 나아가서는 우려에 가까운 자책을 표하고 있었지만, 쇼우는 아처가 걱정하는 만큼 우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울보다는 신기함에 가까운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 가 동경하고,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바다’는 전자의 바다와 얼마나 다를 까? 일종의 거대함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어버린 바다는, 결국 앞으로 살아갈 삶에 펼쳐져 있는 미지라고 표현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 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아처에게 제대로 가 닿을 수 있을지 몰라서, 쇼우 는 잠시 말을 골랐다. 그 말을 고르는 짧은 시간 동안 깊어져 버린 아처 의 눈동자 앞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펼쳐진 역경을 생각하는 것보다, 이겨내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게 즐거운 건 당연하잖아?” 

“그래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일에 대한 대답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아처가 물었잖아? ‘바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러니 그 점을 사과—” 

“싫어, 서번트의 대답에 제대로 대답하는 것도 마스터의 사명이니까.” 

“……여전히 고집스럽군.” 

 

포기처럼 입을 다물어버린 아처 앞에서, 쇼우는 이겼다는 얼굴로 의기 양양하게 웃었다. 여전히 노을이 비쳐드는 커튼 너머, 침대가 있는 마이 룸은 어딘가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향수鄕愁라고 불 러서는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입술 위로 미끄러지는 무언 가. 쇼우에게는 지나간 삶과 돌아갈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셀은 쓸 모없는 데이터를 1회용 NPC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배 전쟁을 거치며 배워 온 감정들이 뭉근하게, 전자와 데이터의 심장 위로 눌어붙 는 느낌이 있었다. 

 

“아처가 말한 바다를 나는 겪어본 적 없지만, 나는 전자의 바다에서 태어났잖아? 그러니까 모두가 동경하는 바다가, 내게는 여기 바로 이곳 인 거야. 미지를 품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경, 마음이 편해져 서 내일을 꿈꾸고 현실을 쉬게 하는 그 공간이, 내게는 이곳이고, 앞으 로 이어지는 삶이겠지. 그리고, 오늘을 ‘바다’로 만드는, 동경하고 아름답 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존재가, 분명히 아처야. 아처가 내 바다의 백사장이고 파도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할래.” 

 

말하다 문득 생각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말이다. 마치, 마 치. 내 삶을 함께해달라는 고백처럼 들리잖아! 쇼우는 얼굴이 달아오르 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노을의 탓으로 돌려버리려고, 커튼을 바라보았 다. 옆얼굴에 꽂혀 드는 아처의 시선이, 정말 끔찍하게 따갑다. 딴 데 좀 보라고! 분위기 읽어! 차마 말하지 못할 불만을 투덜투덜 품고 있을 때, 노스탤지어를 담은 채로 아처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전자가 아닌 해수의 바다에 데려가 주지. 둘이서, 바다를 보러 가자.” 

 

그건 여전히 묵직한 책임감을 담은 목소리였지만, 자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더, 그래. 

쇼우는 아처가 터무니없이 부끄러운 고백을 받아주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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